광산

 광산 사택촌 전시장과 충혼탑

 

띠동갑 남동생과의 태백· 동해안 여행기

재작년에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는 남동생이 형과의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루어진 여행이다.

 

북에서 월남한 후 아버지께서 서울에 있는 광산기계전문학교를 수료하고 배치받은 곳이 현 태백시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이다.

동생이 이곳을 떠난 지 53년 이 되었고 아버지도 그해(1967) 서울집 대조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50년대 말에 이미 그곳을 떠나온 후여서 띠동갑 남동생과는 함께 생활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첫 번째 들 린 곳이 태백초등학교였다 6학년 남자 1명 여자 1명이라고 하니 학교의 규모를 알만 하였다. 금천초교 분교로 전락했다가 다시 본교로 오락가락 할 정도로 인구의 변화가 학교 학생 수 에서부터 태백시 인구와 엄청 비례 되는 양상이다.

 

 

태백시 인구는 202042 천명이고 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이하 석공) 82년 만에 존폐위기에 봉착하고 있어 인원은 점점 줄고 있다.

생산하고 싶어도 인력 부족 현상이 되고 갱도 유지 인원 자체도 급급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자동화기계과, 전기과, 금형기계과, 자동차과, 전산건축설계과, 군특성화과정 2개과등 군 관련 학과를 운영, 군 장비 운용 및 정비기술 등을 습득해 졸업 전문하사로 군 복무까지 하는 제도이다. 산업체에서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므로 전국으로 취업이 되고, 타 지역에서도 진학을하며 활발한 취업 관계로 많은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

(1, 58, 2, 83, 3, 123명 합계 264명 교사 80)

 

아버지가 지내던 계산 사택은 적산가옥으로 넓은 간부 사택이었다, 그 집들을 다 밀어 없애고 연립 형식으로 여러 가구를 수용하였는데 옛날 집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동생은 그 주변이 생각났는지 오르내리며 추억을 찾았다고 한다.

 

사전 예약해 둔 태백시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늦게까지 부모님에 대한이야기, 북에 남긴 추억 이야기 등을 밤을 새워 좋은 추억을 남겼다.

동해로 넘어오는 길에 중학교에 방문 학적부를 복사하고 성적표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동생의 한 장면이 부러웠다. 초등학교는 학생부가 전산이 되어있었는데 중학교는 학적부를 가져와서 복사를 해 주었다.

 

중학교가 학생이 줄어들어서 장성여자중학교와 태백중학교가 통합되면서 태백중학교로 교명이 합치면서 3월에 개교한다고 하니 태백시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 습쓸한 기분이었다.

 

구문소(求門沼)라는 아주 특별한 암반 길을 통과해야 태백시를 들어가는데 이제는 옆으로 도로를 내어 역사와 현존하는 구멍 소가 구문소로 이름이 바뀐 세종실록지리등에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탄광촌을 지나며 동해로 떠났다. 굽이굽이 산길이 단풍을 뚫고 새로운 느낌의 명소를 찾은 기분이었다.

 

동생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자기 가족들과는 삼척시의 후진 해수욕장은 여러 번 방문했다고 하여 민박하던 옛집을 방문하였다.

이미 어르신 들은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집을 팔고 떠났다고 하며 서운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촛대바위가 있는 곳 많은 설화를 간직한 촛대바위를 어릴 적에 본 기억이  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는데 그 당시 어떻게 봤는지 새로웠다, 지금은 출렁다리를 만들어 여러 개의 자연 바위들이 되어있는 곳을 탐방할 수가 있다.

 

 

초곡항인 이곳에 횟집이 다섯 개가 나란히 있는데 자연산 맛집들이 있는 초곡항 네 번째 집이 좋다고 하는 태백에서 아무 관계가 없는 점심 식사 집 주인의 귀띔으로 방문하여 먹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맛있는 동해안의 회를 먹고 바닷속으로 빨려 들것 같은 행복한 가을, 좋은 여행이었다.

 

계산사택과

 계산사택과 한우집

 

북에서 월남한 후 아버지께서 서울에 있는 광산기계전문학교를 수료하고 배치받은 곳이 현 태백시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이다.

동생이 이곳을 떠난 지 53년 이 되었고 아버지도 그해(1967) 서울집 대조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50년대 말에 이미 그곳을 떠나온 후여서 띠동갑 남동생과는 함께 생활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첫 번째 들 린 곳이 태백초등학교였다 6학년 남자 1명 여자 1명이라고 하니 학교의 규모를 알만 하였다. 금천초교 분교로 전락했다가 다시 본교로 오락가락 할 정도로 인구의 변화가 학교 학생 수 에서부터 태백시 인구와 엄청 비례 되는 양상이다.

 

태백시 인구는 202042 천명이고 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이하 석공) 82년 만에 존폐위기에 봉착하고 있어 인원은 점점 줄고 있다.

생산하고 싶어도 인력 부족 현상이 되고 갱도 유지 인원 자체도 급급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자동화기계과, 전기과, 금형기계과, 자동차과, 전산건축설계과, 군특성화과정 2개과등 군 관련 학과를 운영, 군 장비 운용 및 정비기술 등을 습득해 졸업 전문하사로 군 복무까지 하는 제도이다. 산업체에서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므로 전국으로 취업이 되고, 타 지역에서도 진학을하며 활발한 취업 관계로 많은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

(1, 58, 2, 83, 3, 123명 합계 264명 교사 80)

 

아버지가 지내던 계산 사택은 적산가옥으로 넓은 간부 사택이었다, 그 집들을 다 밀어 없애고 연립 형식으로 여러 가구를 수용하였는데 옛날 집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동생은 그 주변이 생각났는지 오르내리며 추억을 찾았다고 한다.

 

사전 예약해 둔 태백시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늦게까지 부모님에 대한이야기, 북에 남긴 추억 이야기 등을 밤을 새워 좋은 추억을 남겼다.

동해로 넘어오는 길에 중학교에 방문 학적부를 복사하고 성적표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동생의 한 장면이 부러웠다. 초등학교는 학생부가 전산이 되어있었는데 중학교는 학적부를 가져와서 복사를 해 주었다.

 

촛대바위.jpg

 초곡용굴 촛대바위

 

중학교가 학생이 줄어들어서 장성여자중학교와 태백중학교가 통합되면서 태백중학교로 교명이 합치면서 3월에 개교한다고 하니 태백시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 습쓸한 기분이었다.

 

구문소(求門沼)라는 아주 특별한 암반 길을 통과해야 태백시를 들어가는데 이제는 옆으로 도로를 내어 역사와 현존하는 구멍 소가 구문소로 이름이 바뀐 세종실록지리등에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탄광촌을 지나며 동해로 떠났다. 굽이굽이 산길이 단풍을 뚫고 새로운 느낌의 명소를 찾은 기분이었다.

 

동생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자기 가족들과는 삼척시의 후진 해수욕장은 여러 번 방문했다고 하여 민박하던 옛집을 방문하였다.

이미 어르신 들은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집을 팔고 떠났다고 하며 서운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촛대바위가 있는 곳 많은 설화를 간직한 촛대바위를 어릴 적에 본 기억이 났는데 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는데 그 당시 어떻게 봤는지 새로웠다, 지금은 출렁다리를 만들어 여러 개의 자연 바위들이 되어있는 곳을 탐방할 수가 있다.

 

초곡항인 이곳에 횟집이 다섯 개가 나란히 있는데 자연산 맛집들이 있는 초곡항 네 번째 집이 좋다고 하는 태백에서 아무 관계가 없는 점심 식사 집 주인의 귀띔으로 방문하여 먹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맛있는 동해안의 회를 먹고 바닷속으로 빨려 들것 같은 행복한 가을, 좋은 여행이었다.

 

철암 광산기록물.jpg

 철암광산기록물

 

동생이 재직 시 교환 교수로 가 있던 일본사가 가 다음 동생과 함께 가기로 한 여행지를 꿈꾼다.

이 동생은 늘 나에게 기쁨으로 울려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전임 되었을 때의 기쁨, 공모전 국무총리상 받을 때도, 교수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학장이 되고 그 숱한 책을 발간하고, 그 모든 게 부모님을 대신하여 내가 받는 행복이고 내가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동생이다.

 

작품활동 하면서 건강하게 제수씨와 해님, , 새로운 식구 해님 남편 모두 사랑하고 감사해요. 끝으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해님이 박사학위 꼭 하기바라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12일 서로 하루만 시간을 더 냈으면 하였는데 다음번에는 좀 더 여유 있는 일정을 하기로 약속하면서 아쉬운 일정을 뒤로하고 헤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