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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방송 잡지

서울시 마을이야기 나의 이야기 웹진에 올려졌어요

서울 곳곳의 마을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가 살던 마을을 이제야 발견했어요! _마을 아키비스트 최호진

 
 
 
은평구 여기저기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누비는 사람이 있다. 백발을 휘날리는 최호진 할아버지의 양손에는 그의 ‘비밀무기’인 카메라와 수첩 그리고 펜이 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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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7-28일 열린 ‘2013 서울마을박람회’에서 만난 최호진 씨를 만났다.
이번 박람회에 그는 ‘은평구 마을축제 이야기 전시회’ 기획에 참여했다.
    
 
“은평구에 60년 넘게 살았는데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어. 은평구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당연히 몰랐지.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6·25 한국전쟁 후 서울로 피난 온 이래로 은평구에 살았다는 최호진 할아버지. 부친과 자신, 그리고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4대가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토박이’도 이런 토박이가 없다. 그런데 정작 최호진 할아버지 자신은 최근 1년 동안 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60평생 마을에 살며 알게 된 사람보다 많다고 했다. 특히 나이, 성별을 초월한 동네 친구들이 많이 생겨 정말 즐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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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씨가 기록한 은평마을상상축제 현장.
사인스피닝으로 축제 알려 아이들이 많이 왔다. 아이들도 함께한 축제날이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많은 축제가 열리는지 몰랐어. ‘은평구 어린이잔치 한마당’이 10회나 됐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몰랐단 말이지.”
 
지난 1년 동안 최호진 할아버지는 은평구 어린이잔치 한마당을 비롯해 은평난장, 갈현 골목 상상축제, 청소년 문화존 등 40여 개나 되는 시민단체들의 크고 작은 마을축제를 기획하는 자리부터 축제 현장, 행사가 끝나고 난 뒤풀이까지 함께했다.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기록을 하다 보니 마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아가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였다. 바로 마을을 위해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마을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축제가 끝나면 청소하는 사람들이 와서 치우는지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데. 담배꽁초 하나까지 자기네들이 다 같이 치워. 축제 준비하고 진행하는 걸 기록하면서 참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 걸 알게 됐어. 축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니 정말 많이 놀랐어. 그걸 보면서 은평구가 잘 발전할 것 같다는 걸 느꼈어. 우리 동네가 참 괜찮은 동네야.”
 
최호진 할아버지는 연신 그들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최호진 할아버지는 정작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축제뿐만 아니라 은평구에서 열리는 각종 아카데미, 음악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우리 동네 ‘최반장’ 할아버지. 그가 이렇게 열심히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무엇 때문일까.
 
“내 나이가 이제 일흔 둘인데 내 나이에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
 
은퇴 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마땅한 일을 찾지 못했다는 최호진 할아버지. 특히 터널 건설일을 해온 엔지니어로서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전무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찾아낸 활동은 시민기자였다.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언론사 교육센터를 찾아 기자교육을 받았고, 평생교육원에서는 문예창작을 배우기도 했다니 그 열정에 사뭇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최호진 할아버지가 MBC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기사의 개수는 650건이 넘는다. 10년 가까이 시민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지금의 ‘아키비스트’ 최호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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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는 작은 수첩, 한 손에는 카메라가 이제는 그의 필수품이 되었다.
    
 
아키비스트(archvist)란 보전 기록인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마을 아카비스트’란 말 그대로 마을활동을 기록하고 보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마을공동체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마을활동과 마을살이의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마을아카이브’ 활동의 중요성이 제기됐다. 활동 못지않게 활동의 기록, 관리, 전파도 중요한 것이란 의식이 싹튼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일을 하는 활동가를 지난해에 모집했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최호진 할아버지다. 1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섬세함,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픈 열정... 최할아버지는 ‘마을 아카비스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 공로와 열정을 인정받아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마을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사명감 같은 걸 느껴. 우리는 하루가 지나면 많은 걸 잊어버려. 기록하지 않으면 10년, 20년이 지나면 과거의 모습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 거야. 우리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 수가 없지. 마을이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해야 후세에 우리 마을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걸 계속 기록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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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본인이 참여한 은평구 이야기전시회 판넬 앞에서 손을 흔드는 최호진 할아버지
(우) 방문한 기자에게 그간의 기록들을 보여주는 최호진 할아버지
앞으로 최호진 할아버지의 기록이 담긴 ‘마을박물관’을 기대해본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자신이 기록한 자료들을 모아 ‘마을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최호진 할아버지. 이런 열정이 있는 한 그의 마을 기록기는 앞으로도 쭉 계속 될 것이다. 최호진 할아버지가 기록한 은평구 마을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한 마을 아키비스트의 열정을 확인해보고 싶다면 10월 12일 토요일 은평누리축제를 방문해보자.
       
 
 
글_임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