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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기록하는 일 쉽지 않아요

마을을 기록하는 일, 쉽지 않아요
은평을 기록하는 아키비스트 4인을 만나다
이신애, 최승덕 기자
은평아키비스트 4인 왼쪽부터 하기홍, 최호진, 정봉선, 박종련 님 @은평시민신문
 
올해 은평상상축제엔 예전엔 없던 특별한 것이 있었다. 축제장 곳곳을 누비며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고 기록하시는 분들 말이다. 어디 은평상상축제뿐일까. 은평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시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예전에도 마을 행사에 자주 참석하셨지만 올해는 다소 생소한 직함으로 무장하셨다. '아키비스트'.

아키비스트란 지속적 가치를 지닌 기록을 수집하고, 평가 ․ 정리하여 보존하며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세련된 직함과는 달리 동네에 마음이 넉넉해 보이는 할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의 인상을 가지신 분들이다. 최호진씨(남, 71세), 박종련씨(남, 67세), 하기홍씨(남, 57세) 그리고 웃으시며 50대 중반이라고만 말씀해 주신 정봉선씨. 이 분들이 우리 동네의 아키비스트, 즉 마을 기록관이다.

하기홍씨는 "마을엔 고유의 문화가 있는데 문화가 공유되지 못하고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 사람들이 같이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지역의 토양, 문화 그리고 흔적을 미래에 충분한 자료로 남겨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사회공헌일자리 사업을 통해 활동비를 지원받게 되면서 마을 기록을 하게 됐다. 은평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활동, 즉 축제, 행사, 교육 활동에 참가해 사람들의 모습들을 사진에 담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들을 가지고 은평누리축제 중에 마련된 마을공동체한마당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은평 지역 시민이 가진 힘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봉선씨는 "처음 참가했던 어린이날 행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해서 이런 축제를 열고 일사분란하게 뒷마무리도 깔끔하고 정말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기홍씨는 "은평은 시민들 사이에 넓고 촘촘한 관계망을 갖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고 있으며 봄 축제나 가을 축제를 통해 서로가 더욱 가까워진다."며 "시민들 간의 연대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뛰어난 점이다."라고 말했다.

마을 기록은 ‘사람’을 기록하는 것

이들은 마을을 기록한다는 하나의 뜻으로 뭉쳤지만 각각 관심은 다르다. 하지만 기록의 대상이 죽어있는 것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인 만큼 다시 '사람'에서 하나로 만난다.

박종련씨는 생태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하천을 소홀히 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되살아난 하천을 보니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곳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은평구에서도 환경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호진씨는 "은평구는 분야별로 교육을 잘한다. 장년층 교육이나 어린이 교육, 인문학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고 말했다.

정봉선씨의 관심은 사람이란다. 그는 "너무 좋은 사람들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환경을 오염 시키지 않겠다며 천연 세제를 이용하는 분들, 축제를 준비하시는 분들...실천하기 어려운데...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하기홍씨는 “지역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공동체와 협동조합을 꾸려가며 동네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낯선’ 마을 기록 활동

이들은 이 일을 하기 전 평범한 주부거나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다소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아키비스트 일은 쉽지 않았다. “역량이 부족해서 힘들었다. 글쓰기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은 없기 때문에 딱딱한 보고서보다는 내 생각을 쓰고 싶었는데.”라고 정봉선씨는 말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고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기록하는 마을 활동가’로 거듭났다.

기록 활동하며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아키비스트란 용어의 생소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이었다. 마을 기록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기홍씨는 “우리에겐 공식적인 직함이 없다. 탐방하는 데 있어 자격조건이 입회비를 낸 사람에 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제약 때문에 취재가 어렵다. 기자가 아니다 보니 뭘 하려고 해도 왜 사진찍으세요 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박종련씨도 “아키비스트란 용어도 생소하지만 어디 단체들 사진 찍어서 올리려고 하면 찍지 못하게 한다.”며 “구청에서라도 직함을 알릴 수 있는 뭔가 공인된 자격을 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기록 활동은 계속 되어야 해”

마을공동체 기록관리사업은 올 해 처음 시행된 만큼 앞으로의 과제도 많다. 현재 이들이 남긴 기록은 다음(www.daum.net) 카페인 은평지역시민사회네트워크 마을아키비스트활동방에 올려져 있다. 간단한 가입절차를 거쳐 볼 수 있지만 주민들이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독자적인 기록보관소가 필요하다.

하기홍씨는 “우리 마을 기록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마을신문과 긴밀하게 결합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을 기록이 더욱 더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록 활동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기록을 남겨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기록관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

박종련씨는 “어떤 마을 활동을 해도 그 흔적을 남겨 놓지 않으면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만다. 따라서 마을 기록 활동은 일 년 행사로 끝날 것이 아니다.”라며 “기록 활동가들이 보다 전문성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